나는 독일 교환학생과 방을 같이 썼다. 그다지 넓은 방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항상 방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서 지낼 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교환학생과 둘이서 못하는 영어로 수다도 많이 떨었다. 도착한 지 2주 정도 돼서, 나는 이 독일 교환학생의 전과(?)를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다. 담배를 하루에 20개씩 피우고도 모자라서 자기 몸에 자해를 해서 여기저기 칼자국이 있었다. 항상 양 손목에 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데 알고보니 손목에 있는 상처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난 한국에서부터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과는 아예 상종을 안하고 살았다. 일단 나쁘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싫어하는 성격이라 처음 이 애가 하는 말이 정말 쇼크였다. 친구도 가려 사귀는 난데 내가 이런 애랑 한 방을 쓰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끔찍했고, 자해 얘기가 나올때는 정말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꺼내면서 생글생글 웃는 걔가 갑자기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래도 담배를 더 이상 피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담배를 생활화하며 살던 애가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다음 주부터는 항상 친구 차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귀가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담배 제공자(?)였으며, 학교에서 벌써 pothead(마약쟁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독일 애는 그렇게 친구를 사귀어가며 담배도 다시 시작했고, 집에 들어올때마다 정말 향수를 한통씩 뿌리고 들어왔다. 한 달 반 정도 지나서 내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클라우디아(독일 교환학생)가 나한테 어제 마약해보라고 추천하던데? 마약에 빠진 것 같더라.”

정말 가지가지한다 싶었고 안 되겠다 싶어서 호스트한테 말했는데, 호스트는 알았다고 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내려지질 않았다. 난 정말 걔랑 지내는 자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여러 친구들이 나에게 클라우디아의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마다 점점 이 아이랑 말을 끊기 시작했다. 10월 정도부터는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너무 무서운 나머지 매일 밤에 울었다. 결국 지역관리자에게 직접 전화로 이야기를 전달했고, 일요일 오전에 삼자대면으로 온가족이 거실에 나와 지역관리자와 이야기를 했다. 결국 클라우디아가 전부 자백했고, 지역관리자는 그동안 클라우디아가 저지른 일들의 목록을 적어 클라우디아 부모 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과장이 된 것이 문제가 되어 클라우디아 부모가 항의했고 우리 호스트는 그쪽 부모에게 사과하며 넓은 마음씨로 클라우디아를 계속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싫으면 니가 나가라.” 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했다. 문제 있는 애를 내쫓는게 아니라 문제 하나 없는 날 보고 나가라 그러다니 정말 그때는 미국에 있으면서 가장 속상했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클라우디아는 혼자 알아서 다른 호스트를 구해서 이 집을 나갔다.

이런 걸 문화적 쇼크라고 하는 지 모르겠지만, 난 미국 애들보다 이 독일 애 한명 때문에 정말 힘이 다 빠졌다. 세상에 이런 애도 있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제 발로 나가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된다. 유럽에 특히 독일은 16세 이상은 술도 마실 수 있고 거의 어른과 다를 게 없기 때문에 정말 많이 개방되어있고, 미국과는 또 한 발 앞서나가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 있던 독일 교환학생 3명 중 2명이 많은 문제를 일으켜 결국 1명은 출국조치가 취해졌다.

아무튼, 이 독일교환학생 빼고는 나의 교환학생 시절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3편! ㅋㅋㅋㅋ 아근데 진짜 이때 너무 힘들었는데ㅠㅠㅠ
잘 해결되서 다행인듯 ;-;